I Think

떠나지 못하는 가을의 마음

강갑준 2004. 11. 15. 15:24

사진동아리 모임으로 14일 경주 불국사를 다녀왔다. 아침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청승스럽게 오드니 만 11시경부터 파란 하늘을 들 냈다. 지난 주 아름답던 단풍은 흐름에 밀려 절반은 낙엽, 시간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불국사엔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산사 음악회’가 ..., 이곳을 찾은 대중들, 조용히 가을을 관조하면서 삶을 포용키 위한 휴식임을 한번쯤 알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봤다.



누운 낙엽을 밟지 않으려고 낙엽이 진자리를 피해 걸음을 옮기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투명하게 푸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는 낙엽은 그래서 더욱 희기(喜氣)만 하다.
이 순간 하늘은 지는 낙엽을 배웅하는 조연이다. 맑은 가을 하늘, 불국사의 아침에 지는 낙엽은 그만큼 아름답다. 잎을 돋아 내는 때보다도 낙엽이 질 때 아름다운 단풍의 낙화는 ‘아름답게 진다’는 말을 가슴에 남기며 소리 없이 진다.


낙엽이 지는 아침, 이별의 흔적도 없이 누워 있는 낙엽을 보며 헬렌니어링의 말을 떠올린다. “죽음은 육체를 갖고 사는 것의 휴가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해야 한다. 하루일이 끝나면 밤의 잠이 축복을 가져다주듯 이 죽음은 더 큰 날의 시작일 수 있다. 끝이 다시 시작되는 삶은 아름답다. 그곳에는 단절의 절망이 없다. 단지 평화가 있을 뿐이다. 낙엽이 지는 나무는 평화롭다. 질 때 아름다운 낙엽처럼 내 삶의 낙화 역시 그렇게 아름답기를 나는 소망한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무 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옆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한 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 주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 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벌써 아득합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낭랑하던 풀벌레 소리,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 불면 사각사각 소곤거리던 붉은 수수밭, 가슴을 묻지 못한 새들 떠나고 단풍도 비어 갑니다. 그 빈자리에 와 몸을 푸는 서늘한 안개, 이거 야단났습니다. 거든 것 하나 없는데, 저만치 겨울이 보입니다.


아직도 겨울로 들어서지 못한 나무들, 풀, 새, 그리고 사람들, 미리 겨울로 달려간 바람은 한기를 뺏긴 채 맥없이 돌아와 살랑거린다. 한없이 가벼운 햇살에도 흔들리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가을이 떠나지 못하는가. 길어진 그림자. 그 그림자를 끌고 그대들은 오늘밤 어디에 걸쳐 있는가.


사진가들의 특성 중 하나는 풍경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 작업하든 작업 목록에는 하나쯤 풍경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이 있기 마련이다.
중년에 들어서면 아예 풍경 쪽으로 방향을 바꾼 작가들도 많다. 그것은 나이 먹으면 찾아오는 귀소 본능의 한 형태이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언제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