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윈난(雲南)성 여행기

강갑준 2007. 3. 20. 08:27
중국을 여러 번 가보았지만 내게는 윈난(雲南)성만큼 인상적인 곳도 없다.

작은 기와집들이 수없이 모여 거대한 풍경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면,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오랜 옛날 어딘가 낯선 시간 속에 떨어진 아득한 기분이 된다.

나 자신의 기와집에 대한 애착은 어릴 적 대평동의 막다른 대문 기와집에서 살던 아련한 추억에서 비롯한다. 작고 허름하든 크고 대궐 같든, 우리 집이든 친구네 집이든 그리운 기와집의 추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윈난성에 가면 크기뿐 아니라 그 밀도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 앞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옛집을 개조한 카페 4층 꼭대기에 올라가 리장(麗江) 고성을 내려다보면 오밀조밀한 기와들이 모여 거대한 무덤을 이룬다. 중·고등학교 시절 비원에서 수채화를 그리던 이래, 정말 오랜만에 나는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은 헐리고 없는 어린 날의 옛 기와집들이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집들을 왜 우리는 헐어야만 했을까? 그 시절의 도시계획 탓에 사라져버린 옛집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릴 적 잃어버린 보물섬 지도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윈난성의 기와 풍경은 오래 전에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다시 만난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다.

아무리 풍경이 기막혀도 여행객들은 늘 자신있게 허리를 쭉 펴고 걷지 못한다. 화장실에 간 뒤 돌아오지 않은 여행객이 장기가 모두 적출된 채 낯선 곳에서 발견됐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중국에서 가져오는 장기들이 사형수들로부터 나온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들은 터라, 중국 대륙에 대한 무서움은 그 광활한 경이로움만큼이나 우리들 뇌리에 커다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아주 옛날엔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간다 했고, 그 다음 시대엔 눈알을 빼간다 했고, 요즘은 장기를 빼간다는 이 끔찍한 세상의 세월은 험악하게 변해 가도 고성의 풍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리장 고성의 밤 풍경은 한번도 꾸어보지 못한 화려한 꿈 속 풍경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빼곡히 들어선 낡은 집들의 옛 향취는 물건을 사고파느라 정신이 없는 상업주의에 묻혀 어쩔 수 없이 제 맛을 떨어뜨린다. 상가가 아닌 고요한 그대로의 옛집들을 바라는 여행객의 마음은 과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화려하게 빛나는 옛집의 배경음악은 요즘의 테크노 음악이다. 온 몸을 흔들어대는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 잊을 수 없는 리장의 밤 풍경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아쉬웠다.

윈난성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고 끝나는 쿤밍(昆明)에서 북한 특산품점에 들렀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됐고, 김일성 주석 부자의 사진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야무지기 짝이 없는 북한 아가씨가 한 시간 가까이 북한 특산품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는지 일행은 모두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말과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금강산 입구에 걸려 있던 현수막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표어가 적혀 있던 기억이 났다. 자본주의의 거센 바람에 휘말리지 않고 그들은 언제까지 자기 식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북한 아가씨가 하도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는지라 나는 거금을 주고 중풍을 예방하고 당뇨병을 낫게 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다는 ‘안궁 우황환’을 어머니 선물로 샀다.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는 조그만 약 상자는 내게는 마법의 상자처럼 신기했다. 북한 화폐 단위로는 어마어마한 돈일 것이다. 동포를 믿어 보라는 그녀의 다부진 목소리를 정말 믿고 싶었다. 나는 뭐든지 잘 믿는 게 병인지라, 또 한번 속아보지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중국 어느 곳에 가든 이제는 남보다 먼, 하지만 남일 수 없는 내 형제들의 흔적을 밟지 않을 수 없다. 멀고도 가깝지만, 그러나 먼 형제들이여. 그 비싼 북한산 웅담과 우황청심환이 우리 어머니의 지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윈난성의 기억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왠지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