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정치인들...뉘앙스

강갑준 2006. 12. 24. 07:23
유행인가. 교수들에 이어 정당들도 사자성어를 내놨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무심운집(無心雲集)'을, 야당인 한나라당은 '쾌도난마(快刀亂麻)'를 골랐다. 같은 사자성어도 풍기는 뉘앙스가 각기 다르다. 교수들은 사자성어에 올 한 해를 담았다. 반면에 정당들의 그것은 새해의 다짐을 담았다. 그 다름들이 흥미롭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갯짓을 한다 했다. 어떤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역사의 끝에 가서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지난 일년을 추사(追思)하고 있다. 밀운불우(密雲不雨). 그러니 어떻게 하자거나 하겠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구름만 끼고 비는 오지 않는' 현상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썩 가치중립(價値中立)적인 사자성어다.

 정치가는 그럴 수 없다. 학자에게는 이론이, 정치가에게는 실천이 중요하다. 학자의 시제(時制)는 과거다. 정치가의 시제는 미래다. 그래서 교수들의 사자성어는 다 지나간 올해를 되돌아보고, 정치가의 그것은 오는 새해를 내다보고 있다. 학자는 회고하고, 정치가는 전망한다. 학자는 정리하고, 정치가는 결단한다. 물론 학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참여란, 남의 영역에 뛰어드는 것을 뜻한다.

 정치가도 입장이 다 같은 수 없다. 여당과 야당의 사자성어는 현재 그들이 처한 형편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무심과 쾌도. 강조점이 여당은 무위(無爲)에, 야당은 유위(有爲)에 놓여 있다. 말이든 행동이든, 하는 족족 꼬여 손해만 보는 여당에게는 무위가 최선일 것이다. 반면에 파죽지세로 달려온 야당은 쾌도를 자임(自任)할 만하다.

 여당은, 마음을 비우면 구름이 모인다고 믿는다, 그러나 구름이 모일 것을 노리는 무심은 이미 무심이 아닐 것이다. 당은 비우려고 하지만 청와대가 비울까도 미지수다. 한편 쾌도에 자신이 다치는 수도 있다. 현대사회는 다원(多元)사회다. 복잡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푸는 것도 복잡하게 풀어야 한다. 쾌도의 효능을 의심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여당은 의기소침하고 야당은 의기탱천이지만, 어디에나 덫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