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이미 땅을 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문밖을 나갔더니 놀랍게도 작은 싹이 대지를 열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불과 이틀 전만 해도 꽁꽁 얼어 있었던 대지에, 작은 싹들이 얼음을 깨는 산고를 견디고 그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면, 어김없이 온 산하는 눈꽃을 털어내고 나무마다 물오른 처녀의 젖가슴처럼 초록꽃으로 단장을 하겠지…. 봄은 그렇게 소리도 없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사계절 중에 봄을 가장 좋아한다. 갖가지 꽃들의 화려한 자태에 취해서도 아니고 눈부신 젊은 날에 대한 향수 때문만도 아니다. 이제는 뚜렷한 세월의 흔적 때문에 주름지고 초라해진 내게 봄은 벅찬 희망을 주기도 하고 소박하지만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득한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시간을 거슬러 어느 노선배님의 말씀이 생생히 떠오르게 된다.

"나는 말이야, 평소 베개를 베고 안 자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엉뚱하게도 건강이 안 좋아서 그러시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고 당치도 않은 말이었는지 곧 깨달아야 했다.

"베개를 베고 자면 편안해서 잠을 오래 잘까봐 그런다네."

뭐랄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문득 눈을 뜨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과연 글쟁이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게 했고, 나의 가슴에 지표를 찔렸던 이 한 마디는 아직까지도 나의 반생을 좌우하고 있다. 아마도 이 말은 앞으로도 내게 생생한 울림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보다 더 성숙해지려 하고 자기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다. 또 봄이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대지 속에 씨앗을 묻고 참고 견디다가 연약한 줄기를 내밀고 피어내는 푸른 싹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는 봄에는 책장 문을 열고 보다 성숙된 삶을 위해 독서에 열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겨울 움츠렸던 마음의 문도 열고 오래 묵었던 책장의 먼지를 툴툴 털고 옛날에 읽었던 토스토예프스키「죄와 벌」이나 헤밍웨이「노인과 바다」라든가 쌩떽쥐베리「어린왕자」라든가 이 봄에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감회에 젖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심지어는 한 달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독서인구가 적다는 것은 창의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균형감각마저 저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발적인 사고나 범죄가 늘어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언젠가 일본에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일본조사단이 한국에 파견된 적이 있다. 그들은 6개월만에 돌아가면서 "한국은 걱정할 것이 없다. 독서인구가 적다는 것은 창조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모방에도 한계가 있다"고 보고했다 한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말로써 우리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아름다운 자신의 영혼과 만나기 위해 눈부신 이 봄날이 오면 아침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어떨까?
우리들은 종종 살아지는 것인지 살아가는 것인지 분간 못하고 살 때가 있다. 자신의 삶의 중심을 놓아버리 듯 말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 속에 잡초를 무성히 키우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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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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