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봄꽃은 예부터 살구꽃(앵화)과 복숭아꽃을 꼽았다. 대지(大地)에 한기(寒氣)가 가시면 어느새 이들 나무엔 꽃망울이 맺혀 있게 마련이다.

진흙담 너머로 소복을 한 살구꽃이 피어나는 정경은 누구나 깊은 향수와 함께 봄에 일깨워지는 심저(心底)이다. 살구꽃의 아름다움은 고향을 떠나본 사람이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꽃도 시세(時勢)를 타는지 요즘은 벚꽃을 보고 환호하는 상춘객(賞春客)도 많다. 벚꽃은 원래 습한 기후의 땅을 좋아한다. 일본에 벚꽃이 많은 것은 그런 생태와도 관련이 있다.

살구꽃은 벚꽃보다는 훨씬 소박하다.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는 뒤뜰에 흔히 심어져 있다. 그 열매도 좋으려니와 목재(木材)로도 훌륭하다. 질박(質朴)한 나뭇결하며 그 굳굳한 목질(木質)은 한국인의 기호에도 맞는 것 같다. 우리의 옛 노래엔 살구나무를 소인(小人)에 견주고 있다. 그러나 ‘花下漫筆’을 서술한 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의 글에서는 요염한 미인에 비해야 옳다고 설파(說破)하고 있다. 선연(嬋娟)과 명려(明麗)함은 도화(桃花)나 해당(海棠)에 못 미치지만 요염은 그 어느 꽃보다도 앞서 있다는 것이다.
김억(金億)과 같은 작고(作故)시인은 /하늘 하늘 밤바람이 틀고 매는 사정(舍亭)에 연분홍 살구꽃이 송이송이 떨리오/라고 감각적(感覺的)인 살구송(頌)을 읊은 일도 있다.

어느 학자는 벚나무의 원산지는 韓半島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그 원종(原種)을 발견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금은 우리의 토속적인 정취가 깃든 살구꽃은 오히려 귀하고 벚꽃만 무성한 세상이 되었다.
그 꽃은 어딘지 日本의 취향이 엿보여 마음 한 구석으론 역겨운 느낌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벚꽃은 많은 나무가 어울려 하늘을 덮은 듯이 피어나면 그 아름다음이야말로 봄의 총애를 받을만도 하다.
더구나 꽃이 질 때의 정경은 눈발이 날리는 것같은 눈부신 면모도 보여준다. 생각같아서는 살구꽃도 그처럼 가꾸어 우리의 향토적인 정감을 일깨워 보았으면 좋겠다.

그 소박하면서도 화려하며 한편으로는 겸손한 듯한 살구꽃은 어딘지 우리의 민족감정에도 어울리는 것같다. 이제 봄도 한 고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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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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