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과 12월

I Think 2006. 12. 1. 05:24
달력 속의 1월과 12월은 시종(始終)의 양 극에 존재한다. 1월은 한 해가 새로 열리는 달로,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며 달력 속에 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한 해의 들머리와 끝머리에 한 공간씩을 차지한다. 1월이 첫인상이라면 12월은 어떤 잔상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1월에 희망을 건다. 꿈을 꾸어가며 미래를 설계한다. 그래서 1월의 행보는 역동적이다. 사람들의 눈에 형형(炯炯)한 빛이 인다. 걷어붙인 팔뚝에 불끈 힘이 솟는다. 머릿속에 까닭 모를 빛이 들고 미래완료시제의 꿈이 고운 맵시를 뽐내며 다가온다. 아름다운 아침의 경계이다. 눈길이 이르는 곳마다 서기(瑞氣)가 어린다. 사람을 가슴 뛰게 하는 1월은 마침내 찬 하늘 아래 애드벌룬을 띄워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또 우리의 날들이 늘 꿈의 날갯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숫제 날개를 접기도 하고 날아오르다 추락하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 속에 투덜대기도 하고 자신의 굼뜸과 힘없음에 대하여 회의하기도 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쏜살같다고 한 표현은 기막힌 수사이다. 시간의 진행엔 쾌속 질주의 관성만 있다. 또 시간이 밟는 페달엔 브레이크가 없다. 사시지서(四時之序)라 하지 않는가. 봄이 여름으로, 가을로, 어느새 겨울이 눈앞에 와 있다. 그것들은 덧없이 찰나적이다. 사람들은 춘하추동의 빠른 운행에 자신을 맡긴 채 습관적으로 시간 속의 달력을 찢는다.

한 장, 두 장…. 시간의 잔해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 처연하지 않겠는가. 그 빠름의 속성이 왜 밉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의 어지러운 질주 속에 흐느적거릴 뿐, 그에게 정지 명령을 내릴 힘이 사람에겐 없다. 늘 등 떼밀린 채 그것에 빌붙어 그의 뒤를 좇을 뿐이다.

어느덧 목전의 12월에 사람들은 긴장한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한숨짓는다. 열 한 달의 행적을 들먹이며 토정(吐情)하거나 기쁨에 날뛰기도 한다. 성취에 만족하는 대신 커다란 실패에 낙담하게도 된다. 허실과 명암이 엇갈리는 달이 12월이다.

아, 그보다 달력 속의 12월이 어찌나 창백한지. 달랑 한 장으로 남아 있는 그 고독한 행색이 어찌나 을씨년스러운지….

그러나 12월은 다시 1월을 열기 위하여 밝음을 지향하는 달이다. 회오(悔悟)의 빌미를 대어주는 달이다. 단 한 장으로 남아 있는 시간의 잔여(殘餘)는 우리를 얼마나 혹독히 몰아세우는지. 과거시제 속의 일들을 끄집어내어 반추하게 하는지. 혹은 기뻐하고 혹은 슬퍼하며 산다는 것에 부대껴온 한 해의 파노라마에 울고 웃게 하는지….

아, 또 한 해의 12월이다. 12월은 달력 속에 혼자서 숨죽인 채 있다. 춥고 외로운 모습에 바라보는 시선마저 애처롭다. 하지만 사람에겐 이 춥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강단이 있다. 자신 앞에 단호할 수 있는 의기가 있고, 쉬이 주눅 들지 않는 당찬 오기가 있다.

그런 자에게 12월은 우호적이다. 일 년이라는 삶의 한 단락을 이루는 소박한 성취가 12월엔 있다. 또 삶의 위안이 되는 따뜻한 한 잔의 차 같은 온기가 서려 있어 12월은 살 맛 나는 달이다. 12월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12월은 우리를 시간 밖으로 내쫓으려 함이 아니다. 새 해를 준비하려고 묵은 시간의 장막을 닫으려할 뿐이다.

시간의 끝자락을 지켜온 12월을 사랑할 일이다. 남아 있는 단 며칠이라도 애면글면 애써 끌어안아야 한다. 다시 12월은 온다. 1월이 한 해를 열면 그 극점에 기어이 12월은 뜬다.

그대여, 아직 12월의 달력을 찢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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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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