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들과 점심식사 중 경조사집 음식이 화제로 올랐다. 한 때는 가는 곳마다 갈비탕이 휩쓸더니 몇년전부터 영락공원이 생기고나서 문상차 방문하면 접대가 돼지고기에 소주만 나와 질릴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이가 반색을 하며 사례를 들었다. 자신의 친목모임에서는 앞으로 돼지고기만 제공한다면 장례예식장에 가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물론 웃을여고 하는 이야기다. 손님으로서 결례되는 생각이겠지만 돼지고기에 소주가 얼마나 많이 나왔으면 곳곳에서 질린 소리들이 나올까 싶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30여년전 가덕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마을 취재차 가덕도에 들어 갔는데 그만 폭풍우가 몰아쳤다. 어느 민가에서 숙식(宿食)을 신세지게 되었는데 숭어국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숭어가 들어갔는지 숟가락을 세우면 쓰러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 가덕도의 숭어국의 푸짐한 인심을 친지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다시 찾아가 주인을 뵙고자 했는데 어느덧 30여년이 흘러가 버렸다.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과 그의 남동생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일화는 또다른 음식이야기다. 이들 남매는 한 집에 살면서 냉면과 빈대떡을 손님들에게 대접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들 남매집에 가서 냉면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명사축에 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들은 손님들이 오기 1주일 전부터 꿩고기육수를 준비하는 등 맛깔스런 평양냉면을 대접했다고 한다. 이들 남매의 이야기는 70년대 살얼음 같던 유신 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늦가을 햇살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했던 소중한 미담이었다.
부산에도 그런 분이 계시다. 간혹 방문하면 꼭 비빔국수를 내놓으시는 데 그 맛이 일품이다. 소박한 집에서 고요한 뜰을 바라보면서 부산문화에 관한 담소(談笑)를 나누며 먹었던 국수맛이 자꾸 생각나지만 입맛만 다실 뿐이다. 부산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처럼 손님을 초청하고 그 집만의 별미를 대접하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시대로 접어들며 프랑스는 르네상스를 구가(驅歌)하게 되었다. 그 때 그 일을 본격 추진한 사람이 '자그 랑' 문화부 장관이었다. 그는 장관으로 취임한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가졌다. 사회자가 장관에게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답변은 사람들의 의표(意表)를 찔렀다. 그는 프랑스의 모든 가정에서 그 가정만의 독특한 음식 한가지씩을 간직하고 이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일이야말로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남게 하는 힘이며, 자원이라는 것이다.
문화를 일구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와 이론을 섞어가며, 보통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고급문화(?)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음식과 사는 집,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바로 살아있는 풀뿌리문화이며,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문화의 뜰이다. 그것은 '그 밥에 그 나물'과 같은 획일적(劃一的)인게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진국이 우러나는 맛을 가질 때 풍성해진다. 여기에 나눔의 여유와 멋이 곁들이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생활속의 문화운동을 전개해 보는 건 어떨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30여년전 가덕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마을 취재차 가덕도에 들어 갔는데 그만 폭풍우가 몰아쳤다. 어느 민가에서 숙식(宿食)을 신세지게 되었는데 숭어국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숭어가 들어갔는지 숟가락을 세우면 쓰러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 가덕도의 숭어국의 푸짐한 인심을 친지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다시 찾아가 주인을 뵙고자 했는데 어느덧 30여년이 흘러가 버렸다.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과 그의 남동생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일화는 또다른 음식이야기다. 이들 남매는 한 집에 살면서 냉면과 빈대떡을 손님들에게 대접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들 남매집에 가서 냉면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명사축에 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들은 손님들이 오기 1주일 전부터 꿩고기육수를 준비하는 등 맛깔스런 평양냉면을 대접했다고 한다. 이들 남매의 이야기는 70년대 살얼음 같던 유신 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늦가을 햇살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했던 소중한 미담이었다.
부산에도 그런 분이 계시다. 간혹 방문하면 꼭 비빔국수를 내놓으시는 데 그 맛이 일품이다. 소박한 집에서 고요한 뜰을 바라보면서 부산문화에 관한 담소(談笑)를 나누며 먹었던 국수맛이 자꾸 생각나지만 입맛만 다실 뿐이다. 부산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처럼 손님을 초청하고 그 집만의 별미를 대접하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시대로 접어들며 프랑스는 르네상스를 구가(驅歌)하게 되었다. 그 때 그 일을 본격 추진한 사람이 '자그 랑' 문화부 장관이었다. 그는 장관으로 취임한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가졌다. 사회자가 장관에게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답변은 사람들의 의표(意表)를 찔렀다. 그는 프랑스의 모든 가정에서 그 가정만의 독특한 음식 한가지씩을 간직하고 이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일이야말로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남게 하는 힘이며, 자원이라는 것이다.
문화를 일구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와 이론을 섞어가며, 보통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고급문화(?)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음식과 사는 집,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바로 살아있는 풀뿌리문화이며,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문화의 뜰이다. 그것은 '그 밥에 그 나물'과 같은 획일적(劃一的)인게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진국이 우러나는 맛을 가질 때 풍성해진다. 여기에 나눔의 여유와 멋이 곁들이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생활속의 문화운동을 전개해 보는 건 어떨까.
'I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득...성철 큰 스님 (7) | 2006.11.25 |
---|---|
국화 단상 (0) | 2006.11.25 |
이 글을 쓰고 불국사를 다시 찾아 갑니다 (1) | 2006.11.22 |
커피 한잔... (0) | 2006.11.21 |
저만치 겨울이 보입니다 (0) | 2006.11.18 |